웹소설/기회의 땅 연재본

1부 6화. 스트라우스

사앵 2023. 8. 10. 23:30

 
 
 
 1945년 연말, 컬럼비아 북서부 몬티솔주의 세력가들이 연합에 상납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본래 몬티솔주는 개발이 더딘 벽지(僻地)인 데다 세력가들의 독립 의식이 강해 통제하기가 어렵고 반란이 잦은 곳이었다. 그래서 연합은 보고를 받고도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연합 본부와 경영위원회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미적거리는 사이에 반란군은 원주민 독립운동 세력과 국경 너머 카나타의 갱단을 끌어들여 빠르게 힘을 키웠고, 급기야 본부에서 파견된 지부장과 행정관(Procurator)들을 붙잡아 살해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은 연합은 이듬해 구월이 되어서야 태스크포스를 발족하여 몬티솔주에 파견했다. TF는 적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분투했으나 병력이 수백 명이 넘을 정도로 세를 키운 반란군에게는 역부족이었다. 몬티솔주 감사관(Inspector) 또한 TF를 지원하기 위해 나섰다가 적과 내응한 부하에게 살해당했다. 반란군은 계속해서 동쪽으로 전진했다.

 전선이 수도권 인근까지 밀려나자 연합은 최후의 수를 준비했다. 바로 군 장성 출신이자 옐로우 캡 진압 당시 큰 활약을 보였던 조지 셔먼이었다. 집행관에 임명되어 전선에 급파된 셔먼은 TF의 잔존 병력을 결집하고 연승을 거두면서 전황을 반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기세가 꺾인 반란군은 몬티솔주로 물러났다가 이후 내부 분열로 해체되었다. 

 한편 D.C.에서는 총수의 권위 하락이 반란의 주원인이라는 의견이 제기되면서 스트라우스의 근위대 개혁안이 힘을 얻고 있었다. 여덟 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를 애덤 그랜트의 회장 직속 부서로 창설하고 근위대 프라이토리아니는 위원회의 감독을 받도록 하는 것이 개혁안의 주 내용이었다. 위원회를 연합 본부가 아닌 애덤 그랜트의 사내(社內) 기구로 설치한다는 조항에 대해 구세력 인사들이 반발했으나 경영위는 개혁안을 지지하며 위원회 인선을 서둘렀다.

 49년 9월, 팔라티나이 위원회(Palatinae Committee)가 창설되었다. 루치오가 기획위원에, 아이번이 집행위원에 임명되었다. 총괄위원장은 스트라우스였다.



 "스트라우스, 이 망할 자식."

 법무관 루카 칼레티가 근위대 지휘권 관련 동의서에 거칠게 서명하며 말했다. 

 "당장에라도 멱을 따버리고 싶군."

 칼레티는 오래전부터 스트라우스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도축업자 출신이라는 이유로 스트라우스가 오랫동안 자신을 깔보고 조롱해왔기 때문이었다.

 동의서를 가져온 루치오가 말했다.

 "조금만 더 참으시면 됩니다, 칼레티 씨. 어차피 시간은 우리 편이니까요."

 "도대체 언제까지 말인가?"

 루치오가 동의서를 집어 가방에 넣으면서 칼레티에게 물었다. 

 "최근에 총수님을 뵌 적 있으십니까?"

 칼레티가 고개를 저었다.

 "동생도 자기 남편 얼굴 못 본 지 꽤 됐어. 젠장, 살아있기는 한 건지. 병문안도 안 되고 의사 면담도 안 되니 알 수가 있나."

 "경영위가 병원을 매수해서 농간을 부린 겁니다. 총수님의 상태를 숨기려고요."

 루치오가 칼레티에게 가까이 다가가 목소리를 낮춘 채 말했다.

 "병원장을 만나서 물었는데 일 년도 못 버틴답니다."

 칼레티가 놀란 눈으로 루치오를 바라보았다.

 "총수께서 돌아가시면 급해지는 쪽은 경영인들입니다. 그동안 총수님의 신임 하나만으로 목숨을 부지해왔으니까요. 총수님의 병세를 숨기려 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루치오가 말했다.

 "칼레티 씨의 조카분은 총수님의 장남이자 정당한 후계자십니다. 제시 그랜트 군이 무사히 총수직을 승계받기만 한다면 경영권자들은 알아서 칼레티 씨한테 복종할 겁니다."

 "만약 복종하지 않으면?"

 "이 바닥이 어떤 곳인지 보여줘야겠죠."

 루치오가 말했다.

 "양들이 늑대들과 부대껴 살다 보니 늑대의 이빨이 날카롭다는 걸 잊은 지 오래입니다. 물어 죽일 때가 온 겁니다."



 1950년 5월 13일, 제7대 연합 총수 피터 그랜트가 사망했다. 연합 직위와 애덤 그랜트의 지분을 닥치는 대로 외부 세력에 팔아넘겨 개인 재산을 축적하고 수많은 경영인을 내부에 끌어들여 연합을 도탄에 빠뜨린 그는 자신이 빚어낸 혼란을 수습하지 못한 채 암으로 고통받다가 숨을 거두었다.

 병원장의 전화를 받은 칼레티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경영위원회보다 먼저 총수의 임종 소식을 연합 전체에 알리고 근위대를 그랜트 가문 저택에 배치했다. 그리고 저택에서 발견된 유언장의 내용에 따라 피터 그랜트의 장남 제시 그랜트를 카일루스 연합의 총수이자 애덤 그랜트 주식회사의 회장, 그랜트 패밀리의 보스로 추대하겠다고 경영위에 통보했다.

 이튿날 그랜트 타워에서 제8대 총수 취임식이 열렸다. 제시 그랜트는 연단 아래 참석자들의 시선을 버거워했다. 열세 살짜리 소년은 손을 덜덜 떨면서 마이크를 잡았다. 취임사는 짧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황급히 마이크에서 입을 떼고 연단 위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뒤이어 총수의 모친인 베아트리스 그랜트가 마이크 앞에 섰다. 그녀는 아들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 자신이 총수직을 대행하고 제 오라비인 칼레티를 감찰관(Censor)에 임명하여 자신의 업무를 돕도록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구세력 보스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경영권자들이 얼굴을 구긴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거 깡패들 무서워서 출근하겠습니까?"

 경영위원 로버트 러먼이 말했다. 취임식 이후 첫 경영위원회 회의가 진행 중이었다.

 "거들먹거리면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꼴들 보면 정말 불안해 죽겠습니다."

 다른 경영위원들이 러먼의 말에 맞장구쳤다.

 "칼레티를 등에 업으니 눈에 뵈는 게 없는 거죠. 통제가 안 되는 짐승들이에요. 그 짐승들이 언제 이 건물을 피바다로 만들지 누가 알겠습니까?"

 "맞습니다. 대책을 세워야 해요."

 경영위원들의 아우성에 회의실이 소란스러워지자 경영위원장 알렉 윌슨이 못마땅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쓸데없는 걱정이 너무 많군요."

 윌슨의 말 한마디에 회의실이 금세 조용해졌다. 윌슨이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께 질문 하나 하죠. 혹시 이 중에 칼레티와 원수진 분 계십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없으시죠? 그럼 된 겁니다."

 윌슨이 웃으며 말했다.

 "루치오 알레산드리니와 그 외 구세력 놈들, 우리를 죽이고 싶어서 안달 나 있긴 해도 결국에는 모두 칼레티의 부하들입니다. 칼레티의 명령 없이는 우리를 해칠 수 없어요."

 "그렇긴 하죠. 하지만 만약 칼레티가.."

 윌슨이 러먼의 말을 잘랐다.

 "애초에 칼레티가 여기 지사장이나 법무관이 될 수 있도록 도운 게 누구입니까? 우리입니다. 칼레티는 우리한테 빚을 진 거예요. 적어도 자기가 사람이라면 우리를 해칠 게 아니라 은혜를 갚으려 하겠죠."

 "칼레티가 그럴 위인이 아니긴 하죠.."

 경영위원 브래드 러셀이 조용히 말했다. 다른 이들도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부위원장 세라 도프먼이 입을 열었다.

 "설령 칼레티가 다른 마음을 품는다 해도 다들 알다시피 우리에게는 다른 보험이 있습니다. 적어도 베아트리스가 총수직을 대행하는 동안에는 그 누구도 우리를 건드릴 수 없어요."

 "물론 칼레티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보험이 되겠죠. 그래서 말인데, 팔라티나이 건으로 화가 나 있는 우리 도축업자 친구한테 선물을 좀 주려고 합니다."

 윌슨의 말에 경영위원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선물이라면 어떤..?"

 러먼이 묻자 도프먼이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러셀이 취임식 전에 스트라우스로부터 받은 편지예요. 내용이 꽤 재밌더군요. 칼레티한테는 더 재미있을 수도 있고요."

 '선물'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경영위원들이 놀란 눈으로 윌슨을 바라보았다. 윌슨은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왜 다들 그렇게 봅니까? 그냥 스트라우스에게 휴가를 좀 주자는 겁니다."



 다음 날 아침, 그랜트 타워에 출근한 칼레티는 경영위로부터 스트라우스의 편지를 넘겨받았다. 취임식 전에 칼레티를 암살하고 그로 인한 혼란을 틈타 제시 그랜트의 이복동생인 조엘 그랜트를 신임 총수로 추대하자는 내용이었다. 칼레티는 편지를 찢으며 격분했다. 그는 여동생을 찾아가 연합의 반역자인 스트라우스를 심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비서로부터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스트라우스는 곧장 윌슨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연결음만 수화기에서 계속 울릴 뿐 윌슨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도프먼과 다른 경영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급히 사무실을 나와 D.C.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경영위와 연락을 취하려 했다.

 어느 뒷골목의 공중전화 부스에서 러셀과 연락이 닿은 것은 해질녘이 다 되어서였다. 스트라우스가 편지에 대해 추궁하자 러셀은 자신도 잘 모르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경영위는 자네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걱정 말게."

 "누구는 뒈지게 생겼는데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스트라우스가 핏발을 세운 채로 수화기에 고함을 쳤다.

 "윌슨이랑 도프먼 그년한테 똑똑히 전해! 절대 나 혼자서는 안 죽는다고! 알아들어?"

 스트라우스가 거칠게 수화기를 내려놓고 차에 올라탔다. 경영위에 배신당한 것만 생각하면 치가 떨렸지만, 우선은 자기 목숨부터 지켜야 했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질 않았다. 이오시프 바실리예프는 이미 죽고 없었기에 그의 보호를 받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랜트 가문 저택을 찾아가 베아트리스에게 직접 해명하는 방법도 있긴 했지만 그건 너무 위험했다. 저택 문턱을 무사히 넘을 수나 있을까 두려웠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방도를 궁리하던 중에 누군가 자동차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스트라우스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바깥을 바라보았다. 루치오가 차창 너머에 서 있었다. 스트라우스가 어색하게 웃으며 천천히 차창을 내렸다.

 "루치오, 오랜만이군. 여기는 어쩐 일로?"

 "그냥 지나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렇구먼. 저기 말이야.. 내가 좀 급한 일이 있어서 말일세."

 "아, 그러시군요. 조심히 가십시오."

 스트라우스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스트라우스 씨."

 스트라우스가 고개를 돌려 루치오를 바라보았다.

 "예전에 안드레이 브루실로프 재판 때 말인데요."

 루치오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때 저한테 가방 집어 던지시면서 뭐라고 하셨죠?"

 스트라우스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게.."

 그가 루치오의 뒤에서 다가오는 사내들을 바라보며 말을 더듬거렸다.

 "기억이 잘..."

 "안 나시는군요."

 루치오가 슬쩍 옆으로 비켜섰다. 감찰관보 데이비드 카푸치가 권총을 꺼내 들었다.

 "칼레티 씨께서 안부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카푸치가 방아쇠를 당겼다. 차창에 피가 확 튀었다. 스트라우스가 운전대 위에 머리를 처박았다.





 실제 역사에서,

 서량에서 반란이 일어나다. 좌장군 황보숭(皇甫嵩)이 나서서 격파하다.

 서원군이 창설되다. 건석이 상군교위에, 원소가 중군교위에, 조조가 전군교위에 임명되다.

 하진과 건석이 서로를 미워하다.

 영제(靈帝)가 죽고 장남 유변(劉辯)이 즉위하다. 태후 하씨가 섭정하다. 하씨가 오라비인 하진에게 녹상서사 벼슬을 내리다.

 건석이 하진을 죽이고 유변의 이복동생 유협(劉協)을 옹립하려 하다.

 환관 조충(趙忠)과 곽승(郭勝)이 서로 의논하여 하진에게 건석의 계획을 밀고하다. 하진이 건석을 잡아 죽이다.